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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김기춘과 김태리, 응답하라 1987에서 만나다!

EUN^^B 2017. 2. 1. 02:46

김피디닷컴 단독 기사!  한 많은 이 세상, 김기춘이 결국 구속되었다.

겨우 블랙리스트로 구속이 됐다 ㅋㅋㅋㅋㅋㅋ

김기춘이 변호인 보고 혀를 찼다는데 나도 혀를 차며 정말 헛 웃음이 나온다.


영화배우 김태리


내가 좋아하는 영화배우 김태리.

그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에 출연하여 상당히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임순례 감독의 새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출연한다고 들었는데 새로운 뉴스로는

독특한 영화감독 장준환의 신작  ‘1987’(제작 우정필름)에 출연 확정했다고 한다.



하정우와 김태리의 두번째 만남, 기대된다.

특히 장준환 감독은 '지구를 지켜라'라는 독특한 영화를 만들어서 매우 주목했던 영화감독이고 뭔가 터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를 터트렸다.

분명 장준환 감독에게는 독특한 감독의 냄새가 난다.

김태리와 장준환은 이름만 들어도 케미 철철 넘친다.



한편 김기춘은 심장에 뭘 박았다나 뭐라고 하면서 구속됐다.

어떻게 김기춘 같은 현대사를 바꾼 인물을 겨우 블랙리스트로 문화계 지원 안하고 불이익 준 혐의로 구속을 하나? 증거 인멸 안 했으면 그나마도 구속 못했을 뻔 하지 않았나?


정말 대단하다!

간첩조작, 농심 편에서 삼양라면 조작, 구원파, 세월호 등등 피해자의 피눈물이 강이되고 유가족의 눈물이 제주 앞바다가 되는 그러한 인물 김기춘이 겨우 블랙리스트 혐의라니!




김고은과 함께 노출로 시작했지만 크게 될 배우 김태리.

국내 노출 수준 최고 영화라고 홍보되던 아가씨의 김태리는 의외로 수수한 느낌이 강했다.

김고은이나 김태리나 아무리 노출을 해도 해할 수 없는 순수함이 보이는 배우다.



그런 김태리의 차기작 영화 '1987'은 1987년 6월을 그린 작품이다.

1987년 6월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87년 6월 항쟁이란 말은 그냥 고유명사처럼 쓰는 말이다.


4.16 혁명과 함께 지금의 민주공화국이 있게 만들어준 시발점이 된다.

87년에 한 젊은이가 사망한다.


다시 김기춘 이야기로 넘어가자!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밝힌 바로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영화 '변호인'을 보고 혀를 찼다고 한다.  유진룡 전 장관은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하여 "(김기춘 전 실장이) 변호인을 비롯해서 많은 그런 영화들, 그런 걸 만드는 회사를 왜 제재를 안 하느냐(고 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변호인 배급사도 아니고 투자에 참여한 CJ에 대한 제재를 지시했고 조원동 전 경제수석이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에게 경영에서 손을 떼라고 압박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CJ부회장이 물러났다.

CJ 계열은 당시 SNL에서도 정치 풍자를 했었고 상당히 못마땅한 면이 많았을 것이고 그 이후에 은지원이 정부 정책을 옹호하는 홍보에 참여하기도 한다.


김태리가 출연 결정한 영화 1987.

87년 1월에 사망한 서울대 언어학과 대학생은 박종철이라는 학생이었다.



1965년 4월 1일생, 대한민국 부산직할시 서구 아미동이 주소다.

스물한살 되던 해 1월 14일 박종철 학생은 숨지게 되는데 이후 대한민국은 그를 박종철 열사라고 부른다.

박종철 열사는 21세의 나이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용산구 갈월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고 숨진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지고 책상을 탁 쳤더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이 나돌았다. 

이 사건을 은폐하려던 전두환 독재 정권을 향해 시민들이 일어났고 그것이 바로 6월 항쟁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시위와 같은 시민 혁명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후 전두환은 죽일 만한 숫자가 아닌 수 많은 사람들이 시위를 하자 결국 6. 29 선언을 발표하며 대통령 직선제를 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을 수 있는 민주주의 공화국을 쟁취했다.


그렇다면 김기춘은 왜 변호인 영화나 그때 그 사람들 같은 영화들을 그렇게 싫어했을까?

그때 그사람들이야 당연히 아시다시피 박정희 사건을 다룬 영화니까 그렇다치고 변호인은 뭣 때문에 그렇게 괴로워했을까?



변호인에 고문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나? 변호인은 부림사건, 즉 부산의 학림사건을 지칭하는 것인데 박정희가 죽고 신군부라는 전두환이 들어선 때의 이야기다.




1981년 9월 공안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도 없이 체포해 20일에서 63일동안 불법 감금하고 고문하여 용공, 빨갱이로 조작하여 기소한 사건이다. 



김기춘이 자신을 키워준 인혁당 사건을 기소한 신직수에게 배운 것이 뭐였겠나?

대학가에서 벌어지는 데모가 북한 간첩들의 배후 조종에 의해 벌어지는 것이라고 몰아 시위를 막고 여론을 조작하는 것 아니겠나?

요즘 우익진영에서 빨갱이들이 촛불 시위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뿌리가 있는 것이다.

근데 간첩의 지시를 받았다고 자백하는 이가 없으니 온갖 고문을 하게 되는데 김기춘 수사국장 시절에는 CCTV로 수사 현황을 모니터링까지 했다고 한다.

1975년 11.22 사건은 남산 지하실에서 고문 당하고 윤간 당한 관련자들의 허위 자백으로 북괴 간첩단이 만들어 졌다.


그런데 변호인의 고문 장면이 과연 편했겠나?



김태리는 주인공 연희 역인데 강동원과 민주화 항쟁 시위의 한 가운데서 투쟁한다.

민주화를 외치는 김태리와 강동원,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을 은폐 조작하려는 정부.

김태리와 강동원을 막는 김기춘과 같은 공안들.



실제로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박종철 열사 고문 치사 사건 당시 김기춘은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이었고 6월 항쟁이후 대검찰청 검찰총장에 오르고 이후 법무부 장관이 되는 초고속 출세를 한다.


하지만 최소 전두환 정권은 몰아내고 대통령 직선제를 가져왔다.

하지만 야권 분열로 국민의 염원과 수많은 희생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 부분은 당장 몇달 후면 문재인, 이재명을 통해서 확인 가능할 수 있으니 잘 지켜 보시라.

당시는 반기문이 아닌 노태우 정권이 들어 섰다.

아!!! 반기문은 불출마 선언했다.


그리고 또 화려하게 김기춘은 범죄와의 전쟁을 만들며 화려한 경력을 쌓는다.

이후 유서대필 사건 지휘했고 최근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세월호와 구원파 유병언 사건 (오대양 집단 사망부터), 또 다이빙벨 상영에 탄압과 보복, 부산국제영화제 망가지고... 뭐 수 많은 의혹들이 있지만 결국 딸랑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김기춘 구속 이후 나오는 영화 1987은 과연 어디서 투자와 배급을 했을까?

한번 알아 맞춰 보시라!!!!




영화 ‘1987’은 CJ E&M이 투자 배급을 맡는다.

김기춘!!! 보고 있나?

김태리의 멋진 연기 기대한다!!!!!